동물용품 디자이너, 외교관, 선생님, 아빠, 운동선수, 꿈을 찾아 헤매는 소년, 작곡가, 회사원…. 물론 대통령도 있다. 오늘 과천 청계초등학교 졸업식에서 교장 선생님이 졸업생 한명 한명 모두에게 공로, 미술, 봉사, 우정, 친절 등의 상장을 나눠줄 때마다 커다란 영상으로 소개된 친구들의 사진에 적힌 장래 소망이다.

청계초등학교 졸업식이 참 좋았다. 축하의 자리를 어색하게 만드는 격식도 없고, 상 받지 못하는 아이와 학부모를 불편하게 만드는 지루한 외부 상장 수여식도 없고, 한없이 이어지던 축사도 시민 대표인 시장과 학부모 대표인 학교운영위원장으로 끝이었다. 운영위원장은 ‘사춘기’라는 재밌는 시를 읽어주어 분위기를 띄웠다.

내빈 소개도 재밌었다. 졸업하는 어린이들이 오늘의 주인공임을 먼저 확인하고, 함께 학교를 이끌어오신 학부모님의 참석을 알리며, 마지막으로 손님들이 한꺼번에 일어나 인사를 했다. 오늘 졸업식은 청계초교의 교육 비전인 ‘제 빛깔 드높이 펼치는 청계 행복 학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서형원 제공
청계초등학교는 졸업식에서 졸업생 모두에게 상장을 주고 그들의 꿈을 영상으로 소개했다.


나는 따로 소개되지도 않았고 축사도 생략됐지만 마음만은 제일 편하고 즐거웠다. 졸업식이 진행되는 동안 참석한 학부모들과 페이스북으로 이야기를 나눴는데 다들 이런 모습을 흐뭇해하셨다.

청계초등학교는 학교운영위원회가 시작된 10여 년 전부터 학부모의 열정적인 참여가 돋보인 학교였다. 운영위원이 되고자 하는 학부모가 많아서 미리 모여 선발하기도 했다. 당연히 학부모들이 내는 걸로 알았던 크고 작은 잡부금이 사라졌고 더 싸고 멋진 졸업 앨범이 만들어졌다.


다른 곳보다 10년 먼저 친환경 무상급식

과천에서는 2001년부터, 그러니까 다른 곳보다 10년 먼저 초등학교 무상급식이 시작됐다. 급식은 학생과 학부모로 하여금 새로운 참여의 기회를 열게 했다. 청계초교 주변은 생활협동조합 조합원이 유난히 많은 지역인데, 조합원인 학부모들이 운영위 산하 급식소위원회를 만들어 오랫동안 급식 개선 활동을 해왔다. 식재료가 들어오는 아침 8시에 학부모가 직접 검수를 하고 시식회를 통해 김치 공급업체를 선정했다.

시의원이 되고 나서 각 학교의 급식비 사용 내역을 조사해보니 이 학교의 친환경 식재료 사용 비율은 어떤 학교의 두 배가 넘었다. 똑같은 예산으로 말이다.

청계초교 학부모들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운영위원회 소식지를 만들어 성평등 교육, 체벌 문제 등 예민한 문제를 전체 학부모와 공유하고 토론했다. 운영위가 연 게임 중독, 식생활 교육 등의 학부모 강좌는 발 디딜 틈이 없다. 최근에는 학부모 볼런티어 사업으로 학교와 지역의 경계가 더욱 사라지고 있다. 공모제로 초빙된 교장 선생님의 공도 컸다.

학부모의 참여는 즐겁기만 한 일이 아니었다. 소식지를 폐간하거나 운영위가 요구하는 예산을 배정하지 않으려는 교장 선생님도 계셨다. 학부모가 말이 많아 선생님이 오지 않으려 한다는 어이없는 비난을 퍼뜨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상처가 많은 참여였다.

하지만 오늘 나는 다시 확인했다. 평범한 공립학교이지만 청계초등학교가 급식이 맛있는 학교, 내 아이를 보내고 싶은 학교, 졸업식이 즐겁고 유쾌한 학교가 된 것은 학부모의 땀 때문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