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 설문지 보고 배우고 싶은 것 다 표시해주세요. 손자 손녀들과 대화를 하시려면 컴퓨터도 좀 알아야 됩니다. 혹시 한글 배우고 싶은 어르신 계십니까?”
“이 나이에 배우기는 뭘 배워. 배워봐야 만날 까먹는데.”
“고도리만 치시지 말고 우리 동네 젊은 사람들이 자원봉사한다는데 재미로 배워보세요. 운동 프로그램도 있고 하니 개강하면 많이 참여해주시고요.”
“돈은 안 내도 되나?”
“예. 수강료는 없습니다. 대신 재미없더라도 참아주셔야 합니다. 전문 강사가 오는 게 아니고, 우리 동네 젊은 사람들이 봉사하는 거니까요.”
지난해 초 총무과의 계장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물었다. 행안부 권고대로 인구가 적은 곳을 통폐합해야 하는데 필자가 살고 있는 동이 최우선 대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통합에 따른 인센티브(2억5000만원)를 잘 활용해 남는 행정건물을 주민 편의시설로 활용할 수 있으니 괜찮지 않겠느냐, 통합된 주민센터와 거리가 멀어지는 주민이나 관변 단체의 반발이 있긴 하겠지만 잘 설득했으면 한다고 했다. 문제는 필자가 사는 1동 주민센터가 폐지된다는 사실. 이럴 경우 통상 1동에 사는 주민뿐 아니라 선거를 의식한 구의원들의 반발이 염려된다는 것이었다.
운영비 문제, 참여로 해결해야
필자로서도 약간 고민은 됐다. 행정의 기초 단위가 동(洞)인 만큼 풀뿌리 민주주의 활성화를 위해 어느 정도 규모가 적정한지를 놓고 이론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결국 동의를 했다. 간단한 행정 서비스는 어느 곳에서나 이용할 수 있는 데다 인터넷 이용이 활성화된 현재 여건을 고려하면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남는 행정건물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였다. 몇 차례 주민자치위원회의 토론을 거쳐 노인 인구가 많은 1동은 경로당과 노인교육문화센터로, 아파트가 있는 2동 구청사는 마을 도서관으로, 이전하는 경로당은 물물교환센터와 장난감도서관으로 쓰기로 결정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운영비가 문제였다. 구청이 애초에 계획한 사업이 아니었던 데다 직원을 파견할 정도의 공간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노인교육문화센터의 경우도 처음에는 미니 헬스장과 노래방 정도 시설을 해주고 경로당 회장이 알아서 관리해주기를 바라는 상황이었다. 기존 업무만으로도 힘겨워하는 공무원들 처지에서 보면 인원 충원 없이 새로운 사업을 벌인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지역 주민이 자율적으로 참여해 센터를 운영하면 될 일이다. 노인들을 위한 문화 복지시설이 전무한 우리 지역 상황을 고려하면, 이번 기회에 욕심을 내서 작더라도 제대로 된 시설을 갖추고 싶었다. 미니 헬스장 외에 교육센터에 필요한 컴퓨터와 빔 프로젝트 등 노인교실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시설을 꼼꼼히 챙겼다. 그리고 주민복지과장을 만나 프로그램 운영비를 최소한이나마 편성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 결과 운영비 배정 외에도 공공근로와 자활근로자 2명을 배치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2012년 예산이 통과된 이 시점에 남은 일은 주민의 참여를 끌어내고 재능 기부를 조직하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함께 궁리해온 우리 동네 출신 변호사, 지역 봉사단체의 사회복지사, 관심 많은 백 사장과 오늘 저녁에도 만나야 한다.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 즐거운 일로 바쁜 연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