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주민운동, 그 초심을 생각합니다 ③ 유병철
"동네의 '섬'에서 의회로...주민에게 좋은 제도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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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돌아보면 어떠신지요? 한 해를 보내며 대구의 8명에게 '소회'를 물었습니다. 조금은 특별한, 그리고 참 바쁘게 보냈을 '현장'의 사람들입니다. ▷헌 책방을 연 변홍철 '물레책방' 인문학연구실장 ▷새내기 기자로 첫 발을 내디딘 영남일보 김일우 기자 ▷창립 20년을 맞은 '예술마당 솔' 손병열 대표 ▷생존의 현장을 뛰어다닌 인권운동연대 서창호 상임활동가 ▷20년 주민운동에서 풀뿌리의회에 들어간 유병철 북구의원 ▷논란 속에 6.2지방선거 연대판에 선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김동렬 운영위원장 ▷4대강 사업 현장의 절절한 목소리를 전해 온 '낙동대구' 정수근 카페지기 ▷포화 속 한반도에서 여전히 '통일'의 꿈을 찾아가는 6.15대경본부 오택진 사무처장입니다. 이 글은 유병철 북구의원의 2010년 소회입니다.
| | 동네에서 20년...
많은 이들이 시대의 아픔에 몸서리치며 변혁을 꿈꾸고 또 좌절을 겪던 시절, 1990년대 초에 대구시 북구 대현동 '감나무골'이라고 불리는 달동네에 신방을 꾸렸습니다. 노동계에 투신했던 친구들이 하나 둘 또 다른 길을 찾아 나서던 그 무렵, 성당의 친구.후배들과 함께 '감나무골아가방'이라는 무료탁아방을 차렸지요. 그 언저리에 작은 속셈학원을 차려 저의 생업도 준비했습니다.
우리는 '새터공동체'라는 이름으로 한 가족처럼 지냈고, '공동체 사업단'이라고 뜻을 모아 한겨레신문지국을 서너 개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지속가능한 활동을 위해서는 '공동체 차원에서 경제적인 토대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한겨레지국이든 뭐든 성공한 것은 별로 없었습니다. 덕분에 당시 참여했던 공동체 회원들은 아직도 경제적인 어려움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니 어느 것이 주업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삶, 자발적 가난, 소비사회를 거슬러 사는 삶, 나눔과 섬김,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그 때 화두로 삼았던 내용이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어렵고 무거운 주제들이었습니다. 그렇게 대현동 감나무골에서 20년 가까이 살아왔습니다. 그냥 그렇게 '좋은 일 좀 하는' 동네 사람으로 지냈습니다. 돌이켜보면, 의미는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 동네에서 '섬'이었던 것 같습니다.
2000년 즈음,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확대되는 복지정책을 통해 지역 어린이를 위한 '작은학교'를 비롯해 주민들을 위한 무료진료실.무료법률상담실.물리치료실 같은 활동으로 영역을 넓혀갔습니다. 그러면서도 공동체 회원들은 끊임없이 대안의 삶을 꿈꾸어 왔습니다.
현실정치의 두려움...'풀뿌리후보'로 출마
그러던, 2005년인가요. 처음으로 선배들의 역할 분담 차원에서 기초의회 진출을 논의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당공천제가 시행된다는 이유로, 돈이 없다는 이유로 바로 잊어버렸습니다. 우리가 살아 온 지역 활동의 가치와 내용을 좀 더 확장할 수 있다는 당위는 있었지만 저 자신부터 용기가 없었던 것이었지요. 막연하게 현실정치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많은 공동체 가족들이 생계에 힘겨움을 느끼며 지냈습니다. 저 역시 달동네 재개발에 밀려 학원 운영을 접고 처음으로 '월급' 받는 생활을 잠시 했습니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별정공무원으로 지내는 동안 공직사회와 현실 정치를 조금은 경험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2010년. 대구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풀뿌리대구연대'를 만들었고, 야5당은 '선거연대'로 6.2지방선거를 준비한다는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시민사회와 공동체에서 '기초의원 출마' 얘기가 계속 나왔습니다. 여전히 예전에 가졌던 현실정치에 대한 두려움이나 공동체운동이 훼손될 것 같은 걱정이 없지 않았으나, 청년 시절 삶의 가치를 제도 안에서 작게나마 실현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고 출마를 결심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풀뿌리후보'라는 명함으로 낯익은 동네를 수 없이 다녔습니다. 공동체 가족과 동네 주민들의 노력과 격려가 정말 큰 힘이었습니다. 그리고 6월 3일 새벽, '25표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북구의원에 당선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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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뿌리대구연대>의 '풀뿌리 좋은 후보' 발표 기자회견(2010.4.20 대구KYC)...(왼쪽부터) 유병철.김영숙.석철 / 지난 6.2지방선거에서 유병철 후보를 비롯해 야5당의 '야권단일후보' 23명 가운데 기최의원 10명이 당선됐다. 민주당 4명, 민주노동당 2명, 진보신당 1명, 풀뿌리후보 1명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 구의원..."너희 북구는 견인이 골 때리데"
"참 큰 일 났네. 하여튼 공무원들 일하는 게 참 문제가 많아." 이 정도로 지나쳤을 일이 의원이 되고나니 바로 제 문제가 됐습니다. 개원하자 마자 '노곡동' 물난리가 났습니다. 조사관 출신이라고 덜컥 '조사특별위원회' 간사를 맡았습니다. 노곡동 침수사고는 이제 표면적으로는 다 마무리되어 가는 듯합니다. 피해보상도 이루어지고, 관련업체에 구상권을 청구해 보상액 전액을 받아내기도 했습니다. 시설보완 및 장기대책을 추진하는 일이 남아있어 북구청에서는 자문회의와 주민설명회를 거듭하며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원래의 설계대로 침사지와 고지터널배수, 직관로 복원 등을 대책으로 내놓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 우리 특위의 '보고서'를 만들고 있습니다.
"너희 북구는 견인이 골 때리데." 오랜 만에 만난 친구가 북구의원이 되었다는 말에 대뜸 무리한 차량견인 문제를 얘기하더군요. '외제차는 손 안대고, 경차 위주로, 차량 소통에 문제가 없는 지역에서도 무리하게 견인한다고, 그렇게 이루어지는 숨은 이유도 있을 것이라고.' 서민들의 입장에서 당연히 신경을 써야 할 문제인 것 같아 견인차량 종류별 대수, 견인지역 등 자료를 요청하고, 다른 구의 실태도 전화로 알아보았습니다. 구체적인 자료와 담당자의 진술 등이 시정을 요구하는데 참 요긴한 무기가 되더군요.
"구청 예산이라는 게 대부분 국시비 메칭사업이고 경직성 경비라 별로 볼 게 없을 겁니다" 선(選)수가 많은 의원들이 얘기들 합디다. 그런데 이번 예산심사에서 젊은 초선들이 역할을 제대로 했습니다. 당을 떠나 집행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따지지 않고 그냥 통과시켜줄 수 없다고, 준비를 많이 해서 임했습니다. 정회를 거듭했습니다. 의원들 간에 논쟁도 이루어졌고요.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집행부 간부 회의가 예산 심사 때문에 정시에 이루어 지지 않은 흔치 않은 일이 생겼다"고 모 동장이 얘기를 하더군요.
"이왕 줄 정보라면 잘 정리해서 공개하자"
'주민참여예산제' 실시를 촉구하는 구정질문에 "적극 검토하겠다"는 구청의 답변이 나왔습니다. 행안부에서 모델 조례안까지 내려와 있는 상황이라 조례를 제정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작 제대로 운영해야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광주 북구와 부천시, 과천시에 몇몇 의원과 함께 모범사례를 연구하기 위해 출장을 다녀올까 합니다. 단체장의 의지와 훈련된 주민들의 역량이 합쳐져야 하는데, 그 역량을 어떻게 키울 것인지 구체적인 경험을 배우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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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병철 북구의원의 봉사활동과 구정질문 / 사진 제공. 유병철 | 내년에는 '소규모 주민편익사업비'를 공론화시켜 볼까 합니다. '소규모주민편익사업비'라고 북구의 24개 동에 2000만 원씩 편성되는 돈이 있습니다. 주민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동장과 구의원이 협의해 사용하는 예산입니다. 보도블록 교체, 포장 덧씌우기 등의 공사를 하는 것인데 이 예산을 어디에, 우선순위를 어떻게 결정해 사용할 것인가를 심의할 회의를 구성할까 합니다. 주민자치위원을 포함한 주민대표를 구성해 논의를 하자는 것이지요. 사업 내용은 이전과 대동소이하겠지만 주민자치를 내용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상징적인 시작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선거에 나서면서 '정보공개제도' 활성화를 공약으로 냈습니다. 이와 관련해 과천시의회를 다녀왔습니다. 지난 10월 과천시의회는 정보공개센터와 협약을 맺었더군요. 예결산 자료, 행정사무감사 자료, 업무추진비, 해외연수 계획서, 보고서, 의회 공통경비 등 요청하면 주어야 할 정보를 미리 잘 정리해서 공개하자. 그래서 참여를 촉진하자, 대충 그런 내용인 것 같습니다. 우리 의회에서도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되고 있는 것 같아 내년에는 조금 더 구체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동네 일, 의회 일..."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사실 동네일 하려고 구의원 선거에 나갔는데, 의정활동과 관련한 일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달동네 사람이 되고, 달동네 공동체의 삶을 행복한 삶으로 생각하며, 보통 사람들의 선한 마음을 모으고 확대하는 일을 해왔는데, 이제는 좋은 제도를 만들고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가를 연구하고 준비해야 하는 일을 해야 하는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렇지만 동네의 어려우신 분들을 찾아뵙는 일, 작은 도서관을 준비하는 젊은 어머니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일, 주민들의 민원을 해결하는 일들 소홀히 하지 않겠습니다. 나눔과 섬김, 그 삶의 가치를 제도 안에서 풀어가겠습니다. 20년 주민운동, 그 초심을 생각하며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사실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2010 송년] 유병철 / 북구의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