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례만 만들고 예산은 ‘제로’…경남 6천190억 편성 ‘극과 극’ 대구 북구의회, 제도 실현 움직임…집행부와 조례안 놓고 마찰
지방자치를 위한 ‘풀뿌리 정치’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주민들이 직접 지방정부의 예산 편성 과정에 참여하는 ‘주민참여예산제도’가 특히 주목 받고 있다.
지난 2004년 광주 북구에서 처음 도입 됐으며, 2006년에는 행정자치부가 참여예산표준조례안을 만들었다. 2010년 지방선거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며 지난 2011년 7월에는 주민참여예산제를 의무 시행하도록 지방재정법이 개정됐다.
경남, 울산, 경기도 등의 지자체들은 마을 만들기 사업이나 장애인 자립을 위한 주거환경 개선 사업, 우범지역 환경개선,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한 방안 등 주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사업들을 이 제도를 통해 정책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 각 지자체들은 제도를 더욱 확대하기 위해 ‘주민예산학교’ 등 교육, 홍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경기도 고양, 수원시 등은 청소년·장애인 등을 위한 프로그램도 마련해 참여 세대와 영역을 넓히기 위한 노력도 펼치고 있다.
◆대구·경북 지자체들, 소극적 움직임
전국적인 확산 추세와 달리 대구경북지역 지자체들은 형식적 조례만 만들었을 뿐, 실질적인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지난달 27일 한 언론에 따르면, 지난 2011년 제도 시행 이래 경남지역이 총 6천190억원의 주민참여예산을 반영하는 동안 대구경북지역은 ‘0원’이다.
예산위원회에 참여하는 일반 주민의 수는 대구시 3명, 경북은 한 명도 없는 것으로 확인 됐다. 제도 실현을 위한 첫 걸음도 아직 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대구 북구의회가 첫 발을 내딛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구청이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 지지부진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으며 갈등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북구의회 이영재 주민생활위원장은 지난 21일 열린 ‘제199회 제2차 본회의’에서 5분 발언을 통해 “의원들의 적극적 관심과 오랜 시간 토론을 거쳐 조례를 제정했지만 2년이 지나도록 시행되지 않고 있다”며 “집행부가 시민위원 공개모집 등 최소한의 절차도 밟고 있지 않다는 것은 주민들과 의회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지자체 장들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신들이 내세운 현안 사업에 ‘태클’이 걸리는 것을 두려워하고, 공직자들도 거추장스러운 일이 많아지는 것이 꺼려 도입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충분한 협의” vs “빠른 시일 내 시행해야”
북구청은 처음으로 도입되는 제도인만큼 충분한 준비와 의견조율 과정을 거쳐야 해 지금 당장 시행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참여예산제 의무화를 시행하면서, 행정안전부는 3가지 표준안을 제시했다.
제1안은 주민들의 의견 수렴을 위해 설명회, 공청회 등을 개최‘할 수 있다’, 효율적 운영을 위해 위원회, 협의회 등을 ‘둘 수 있다’는 권고에 그치는 반면, 제2안은 ‘~한다’, ‘~둔다’라고 명시한 의무 안이다. 제3안은 위원회에서 더 나아가 각 분과위원회까지 구성하도록 돼 있다.
북구청 등 지역 지자체들은 제도를 처음 시행하는 단계로 제1안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 이에 맞춰 조례안을 준비했지만, 북구 의원들의 ‘적극성’에 제3안에 가까운 조례가 발의됐다는 것이다.
북구청 관계자는 “안정적 제도 정착을 위해 낮은 단계부터 점진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봤기 때문에 1안을 모델로 한 조례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었다”며 “조례안의 수위가 높아졌기 때문에 이를 잘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그만큼 충분한 합의와 내실있는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의회의 입장은 달랐다. 낮은 단계에서 점진적으로 발전시키는 방안은 ‘생색내기’에 그쳐 실효성있는 제도로 발전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북구의회 유병철 의원은 “최초로 이 제도를 도입한 광주의 경우, 북구 등 대구 지자체들처럼 안일하게 생각했다가 지금은 오히려 제도가 정착하지 못하고 표류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며 “이 제도가 잘 되고 있는 곳들은 오히려 3번째 안처럼 실질적 주민참여가 가능한 조례를 처음부터 시행한 지자체들”이라고 반박했다.
유 의원은 “대구 각 구 의원들과 시민단체, 전문가들이 북구의회의 움직임에 큰 기대와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며 “북구가 지역에서 주민참여 제도 정착 및 확산을 위한 첫 발을 내딛었다는 의미를 남길 수 있도록 집행부가 빠른 시일 내 결단을 내려 줬으면 한다”고 촉구했다.